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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버라 앨런라이크 '노동의 배신'을 인용한다.

 

- 일반적으로 저임금 노동 자체가 노동자 스스로를 천민처럼 느끼게 만드는지도 몰랐다.

저녁 식사를 하면서 텔레비저늘 보면 등장하는 사람들 거의 모두가

시간당 15달러 혹은 그 이상을 번다.

 

뉴스 앵커들을 말하는 게 아니다.

시트콤이나 드라마의 주인공은 모두 패션디자이너나 학교 선생님, 변호사 들이다.

 

따라서 패스트푸드 가게 점원이나 간호사 보조는 자기가 비정상적인 존재라고,

파티에 초대받지 못한 유일한 혹은 거의 유일한 사람이라는 결론에 쉽게 도달할 수 있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는 그 생각이 맞다.

가난한 사람들은 문화 전반에서 사라져 버렸다.

매일의 오락은 물론이요 정치적인 선언이나 토론, 그리고 지적인 노력에서도 소외되고 있다.

 

내가 가 봤던 천막 부흥회가 일반적인 부흥회라면

 이제는 종교에서도 빈민들의 어려움에 관해 별로 할말이 없는 것 같았다.

고리대금업자들이 마챔내 예수님을 성전 밖으로 몰아 낸 것이다.

 

 

 

 

저소득층 블루칼라들은 이제 사회전반적으로 소외를 넘어 없는 사람 취급을 받고 있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는 그런 저소득층 사람들이 득실거린다.

편의점, 병원, 패스트푸드점, 공장, 역사대합실, 탑골공원등등.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이런 사람들에 대한 일말에 배려란 것이 없다.

매일 같이 TV는 중산층 이상의 권력 다툼, 애정 다툼 등의 막장으로 치닫고 있지만

거기엔 우리가 살고 있는 진정한 삶은 없고 판타지만 있다.

왜 우리는 우리와 상관 없는 환상의 리그에 빠져 사는 것인가?

대리만족일뿐인가? 아니면 그렇게 살기를 희망하는 것인가?

 

뿐만아니라 종교가 가져야 할 없는 자들에 대한 긍휼 또한 이제는 없는 듯하다.

영원히 변하지 않을 바위 같은 성경, 불경등등의 말씀들은 시대의 유행과 풍파에

모래가 되었나보다.

 

종교 지도자들이 쓸데 없는 당파 싸움과 자기 것 챙기기에 바뻐

삶이 어렵고 생활이 어렵고 영혼이 병들어 가는 저소득층들을 천국으로 혹은 극락으로 인도할

여유가 없는 가보다.

 

이제 진정으로 예수님이 장사치들의 등쌀에 밀려 성전을 쫓겨났다.

 

이 사회는 화이트 칼라, 중산층이상의 부류들만의 사회인가?

 

왜 도대체 온갖 종류에 미디어들은 저소득층에 대한 관심을 알고도 모른척 하고 있는가?

하루 하루 먹고 사는 것보다 왜 쓰레기 같은 연예인 가쉽에 흥분하고 사는 것인가?

 

반성하자!

또 반성하자!

내 영혼을 위해 반성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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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캐나다에서 워킹푸어 생활을 했구나!

정말 운이 좋아 그런 생활을 했구나 라고 생각이 든다.

내가 왜 그토록 캐나다에서의 삶이 힘들고 지치고 피곤하고 절망적이었는지

이제는 알 것같다.

나는 스스로 워킹푸어임을 직감했던 것 이었다.

아직은 한국이 살만한 곳 인걸까..

 

하루 12시간의 단순 노동

500불이 넘는 한달 집세(싸서 500불이지 비싼 곳은 700불이 넘는 게 기본이다.투잡에 2000불 정도 버는 돈에 거의 1/3이라는 엄청난 거금이다. 그것도 아주 몸이 축나면서 번돈인데.)

정말이지 돈이 있어도 어디 구경가고 놀러갈 여유따윈 강철체력과 어지간한 마인드가 아니라면

할 수 없는 일인 것이다.

 

그냥 이런 글을 쓰는 것에 목적 따위는 없다.

그냥 모두가 불쌍할 따름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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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TV프로그램을 보니

 

47세의 아버지가 30개월가량 된 자신의 딸을 들쳐 업고

퀵서비스를 하고 있었다.

 

그것도 한겨울에 어른도 맞서기 힘든 차고 거센 바람을

태어난 지 몇 개월도 안된 아이가 바람을 피할 곳이라곤 아버지 등밖에 없는 오토바이 뒤편에 앉아 아니 매달려 있었다.

내용인 즉

희귀병을 앓고 있던 아내의 갑작스런 임신

그리고 자신을 포기 하더라도 아이를 포기 할 수 없었기에

선택한 아이

그 결과 엄마는 결국 아이와 영원히 떨어지게되었다.

 

그래서 그 아이에 아버지는 아이를 먹여 살리기 위해

일자리를 찾아 헤맸지만

아이와 같이 일을 할 수 있는 곳은 아무 곳도 없었으며

아이 또한 아버지와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선택한 한 건당 5천원을 받는 퀵서비스

각 종 사소한 물건을 주문 받아 원하는 곳에 배달을 한다.

자정에도 일이 생기면 자는 아이를 깨우고

잠 투정 하는 아이를 달래며 다시 들쳐업고

배달에 나간다.

 

국가가 개인에게 해줘야 할 일들이 뭐가 있을까?

저런 가정이 하나만 있을까?

태어난지 30개월 밖에 안된 저 아이의 미래는 어떻게 되는 걸까?

그것을 모두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왜 국가는 존재해야 하는 것인가?

 

저런 아이들에게 무료 탁아소가 필요할 것이고

치매노인 때문에 고생하고 있는 가족들을 위해서는 치매 요양원이 필요하다.

 

과연 정부가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하는 것이 무엇일까?

매일 같이 국민으로서의 도리만 다하라고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가?

살기 힘든 시절을 우리는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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